토스, 살면서 한번쯤
토스를 다닌지 2년 5개월이 됐다. 이 글에서 토스에 대해서 따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글로 남긴다. 4년은 다닌 것 같은데 🤷🏻♂️
내부 100, 외부 0 원칙을 따르면서도 회사를 애정하는 만큼 그리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느낀 만큼 회고를 작성해본다.
처음 회사를 다녔을때도, 첫 이직을 했을때도, 그 뒤에도 항상 "일이란 걸 왜 해야할까" 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제대로 그리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흘렀는데, 이런 맥락에서 토스가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주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해보려고 한다.
일을 왜 해야할까?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아실현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그냥 커리어를 키워보고 싶을 수도 있고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처음에는 취직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해가 지날 수록 살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는(생존 자체도 사실 어려운 일이지만) 커리어를 더 쌓는 것이 어려워보였다. 그냥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금 하고있는 정도만 유지해도 되고, 배움을 멈추고 Comfort Zone 안에서만 지내도 됐다. 근데 왜 난 생존만 하기는 싫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이렇게 해봤다. 그냥 이렇게 생존만 할까 아니면 더 배워서 커리어라고 부를만한 뭔가를 만들어볼까? 선택에 따른 짊어질 무게가 어떨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후자가 더 재밌어보여서 후자를 선택했다. 이왕 일을 할거면 한번쯤은 혹은 몇년 정도는 체력의 한계 지점, 능력의 한계 지점까지 모두 활용해서 최선을 다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았고, 나중에 어떤 후회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야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가족에게, 친구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자식에게 "나 실수 투성이지만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이랬어. 그리고 결과를 떠나서 나는 내 선택의 주인이었고 아무런 여한이 없어. 이 선택과 경험들을 통해서 나에 대해서 알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힌트를 얻게 됐어." 라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다 싶었다. 제품도 만들어보고, 모르는 것 공부도 해보고, 장애도 내보고, 뒷수습도 해보고, 한계에 부딪쳐서 쓰러져도 보고, 일어나도 보고, ... 아!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싶은 것을 최선을 다하며 살아서 죽을때쯤 "지구에서 잘 놀다갑니다~" 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지.
살아오면서 자본주의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별나고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을 봐왔지만 나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재래식 된장과 푹 익은 김치를 먹고 자라서인지 일을 왜 할까, 돈을 얼마나 벌어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질문에는 위처럼 다소 구수하고 담백한 답변을 했다. 이렇게 20대에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갖추게 됐다. 자, 그럼 다음은 뭐지? 일을 마구 해봐야하지 않을까?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
그래서 크고 작은 회사들을 몇개 다니면서 일을 해봤다. 1~20명, 6~90명, 1~200명, 4~5,000명 규모의 기업들을 겪어봤다. 그런데 일에 몰입함에 있어 몇가지 공통된 문제가 있었다.
사업을 잘 하고 싶다면서, 매출을 키우고 싶다면서, 고객을 만족시키고 싶다면서, 돈 그 이상의 가치를 좇는 비전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서 직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직원이 비즈니스와 회사에 깊게 기여할 수 있는 경로들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일을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을 제한해서 막기도 하고, 경영진과 리더급의 의사결정을 비롯한 각종 정보를 제한해서 막기도 했다. 창업자의 생각이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 외의 경영진의 생각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누구의 의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내가 느낀 이 회사들의 진짜 문제는 작은 문제라도 제대로 해결해서 회사에 기여하고 동시에 자신도 성장하면서 몰입감있게 일하고자 하는 직원의 의지와 사기를 모두 쉽게 꺾어버리는 조직 체계/문화가 너무 흔하다는 점이다.
한번 직접 겪은 예를 꺼내보자.
다녔던 어떤 회사에서는 이 팀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있고, 올해의 목표는 무엇이고 왜 그렇게 설정됐는지, 그게 상위에 있는 본부의 목표와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맡게 될거고 그게 팀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말 한마디 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align 과정이 완전히 생략된 것이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견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제가 알아봐줄게요" 대신 "그걸 왜 알려고 하세요?" 였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6개월이 되어도, 1년이 되어도 도대체 이 회사가 가진 3년 5년짜리 로드맵은 커녕 반기 목표 조차 알 수 없었다. 여러번 물어봐도 거의 벽에다 대고 소리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 회사의 메이커들은 align을 스스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이 시작됐을때 그게 무슨 이유로 시작하는 것이고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명이 없었다. 그 사업을 위해 제품이 몇개가 만들어질거고, 각각의 데드라인만 수직적으로 메이커 조직에 떨어질 뿐이었다. 여기에 수반된 의사결정이 타당하게 이루어졌는지, 시장조사가 어땠길래 이정도 규모의 제품을 만들게 되는건지, MVP가 맞기는 한건지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MVP가 아니라 Maximum Viable 이었다. 심지어 한 제품에 반영되어야 할 대규모 업데이트가 2건이 있었는데, 그 A, B 중 이미 A로 진행하기로 결정해서 작업이 2주 넘게 진행이 되고있는데 갑자기 B로 틀어야한다는 결정이 내려왔다.
이런 식으로 문제 하나를 발견해서 부수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겐 정보의 제한, 권한의 제한은 완전 쥐약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까지가 조직 체계 또는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라면 문화, 인재의 문제도 있다. 특히 문화, 인재의 문제는 목적 조직 보다는 기능 조직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할 인과관계나 데이터는 보지 못했다.
어떤 직원들은 그냥 누가 시키니까 기계처럼 하거나, 스스로 일감을 만들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함에도 예전 회사에서 했던대로 일을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피드백을 주기도 어렵고 오히려 피드백을 줬을때 backlash가 있어서 상황만 악화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누가봐도 회사에 필요한 일을 할때 개인 대 개인, 팀 대 팀 혹은 개인 대 팀으로 협업 요청을 하면 "거기까지는 저희의 영역이 아니어서 못해요" 라며 업무분장을 이유로 거절을 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다. 타인 혹은 타 팀을 위해서 그 영역을 조금만 벗어나서 일을 해보면 거기에 쓴 시간과 자원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고 그게 곧 회사에게도 득이며 일에 참여한 모두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는데 이걸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보인다.
직원이 현재 조직의 상황, 의사결정 체계, 시장 상황, 제품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 뒤에 일을 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고 그 결과와 열매를 모두가 나눠가질 수 있는데 이점을 아예 모르거나 위에서처럼 정보나 권한이 제한적이어서 소극적으로, 기계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결국 조직에는 이런 무뚝뚝?한 직원이 많아지게 된다. 게다가 이런 neglection은 airborne 이다. 이제는 어떤 직원 몇몇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냥 회사의 분위기와 흐름이 그렇게 되어버린다. 연못이 한번 흙탕물이 돼버리면 일하고 싶어하는 인재가 들어왔을때 똑같이 흙탕물이 되거나 일찍 조직을 떠나버린다.
그나마 IT 회사들이 조직 체계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현상이 다른 산업에 있는 회사들보다 덜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산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규모가 클 수록, 조직을 기능 조직으로 구성하면 할 수록, 일에 필요한 데이터가 감춰져있을 수록, 팀간 협업이 어려운 문화일 수록 이런 문제는 더욱 쉽게 나타나는 것 같다.
정리하면, 이것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 직원에게 아주 좁은 권한과 책임의 범위만을 허용한다.
- 일 진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 접근에 제한을 겹겹이 둔다.
- 회사, 사업부, 팀, 직원 단계별 목표 align을 하지 않는다. 직원을 고취시키지 않는다.
- 일을 못하거나, 업무태만이 기본이 된 직원들이 옆에서 훼방을 놓는다. 이런 문화적인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그냥 채용한다.
- 팀간, 조직간 협업이 매우 어려운 구조를 유지한다.
- 그걸 니네가 외 헤?
-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
- MVP를 만드는데, 이게 미니멈인가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일을 강행
일을 잘 하려고 하다보니까 몰입이 필요했다. 그런데 실상 일을 해보니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아, 이게 현실인가? 어쨌든 몰입을 방해받지 않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몇개의 회사를 찾았는데 토스가 그중 하나였다.
내가 목격한 토스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그렇다고 이런 수많은 회사들이 너무 별로라거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망하지 않고 생존해 있는 것 자체가 매우 난이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번 정도는 진득하게 한곳에서 일에 몰입하는 경험을 오랜 기간 지겨워질때까지 해보고싶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지금까지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정부의 기조가 바뀌어 하던 사업을 다이어트 해야해서 하던걸 갑자기 멈춰야 한다던가, 내가 제품과 조직에 대해 발견한 문제를 소리내어 말해도 그걸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조직이 아니라던가(너무 조직이 경직되어 있거나), 제품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너무 얇아서 추진력있게 뭘 진행할 수 없는 환경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심심하면 벌어졌다.
지금까지 일해본 바에 의하면 토스는 개인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 체계와 문화를 갖추었고(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갖추려고 하고있고) 일 외적으로도 물심양면 지원한다. 여기에 좀 진심인 것 같다. 그중 내게 가장 크리티컬 했던 걸 꼽아보자면 이렇다.
- 조직이 커지는 와중에도 문제를 뾰족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제품 조직의 대부분을 목적 조직으로 구성해서 기민하게 움직인다.
- 일을 하다가 궁금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떤 정보든 열려있어서 찾아보고 참고할 수 있다.
- 일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들을 지원해서 가급적 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 모든 계열사가 일주일마다 위클리(타운홀)를 열어서 현재 회사의 대내외적인 상황을 브로드캐스팅한다.
- 매주 있는거라 별로 안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타운홀을 주기적으로 열지 않는 회사에서 일해보면 이게 얼마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지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 반기마다 전사 alignment를 진행해서 토스 커뮤니티 상황 전반 그리고 다음 목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점들이 위에 언급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거의 전부 해소시켜줬다. 충분한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주어지고, 어떤 정보든 찾아볼 수 있고, 자주 목표를 align 할 수 있고, PO의 의사결정에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고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할 수 있고 합리적이라면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 당연히 여기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최소한 몰입에 있어서는 이렇게까지 잘 해결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계속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조직 관점에서 토스가 신기하고 재밌는 이유
처음 입사했을때 전사 직원은 700명대 였고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2000명대다. 그리고 입사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토스페이를 맡아서 하고있는데 토스페이가 외형적으로 3~4배 정도 커졌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4~7명 규모의 스쿼드(원래 목적 조직에서의 최소 단위는 스쿼드인데 여기선 사일로로 부르고있다)에서 일하고 있다. 조직이 몇배씩 커지면 은근슬쩍 기능 조직으로 형태가 조금씩 바뀌면서 메이커 한명이 갖는 커뮤니케이션 빈도나 업무 강도가 느슨해지기 마련인데 여전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토스가 국내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들 중 하나이고, 이 점은 희귀한 볼거리? 혹은 경험? 이라고 생각한다. 중간 규모나 대기업 규모의 회사를 다녀본 사람은 아마 바로 체감을 할텐데, 규모가 천단위로 커졌음에도 조직의 대부분을 목적 조직으로 구성해서 움직이는 것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사업이 커지면 그만큼 필요한 인력이 많아진다. 그리고 당연히 메이커가 많이 필요하다. 관리자도 필요하겠지만 일할 소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성별, 나이, 백그라운드, 커리어, 기술적 스킬셋, 문화적 스킬셋 등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크게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재들이 기능 조직에서 볼 수 있는 10~50명 단위의 큰 팀에 들어가서 천천히 적응하는게 아니라 4~6명 단위의 작은 스쿼드로 들어가서 일해야한다. 스쿼드에서는 보통 4~6명이 전부 직무가 서로 다르거나 같아봐야 2명 정도가 같다. 그 말은 올해 100명을 채용해서 가령 그중 15%가 40대인데, 이 40대 메이커들도 갑자기 엄청난 양의 커뮤니케이션 포인트, 협업 포인트에 둘러쌓여 그걸 전부 소화하면서 혼자만이 해야하는 일도 당연히 해내야한다. 이 중 몇 퍼센트가 자신의 Comfort Zone을 깨가면서 극복하고 적응해서 안착할 수 있을까? 한국 IT 산업에서 이런 방식으로 일해봤던 사람이 충분히 많이 있을까? 국내에는 목적 조직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채택한 회사도 소수이다. 이런 점에서 규모가 커졌을때 목적 조직을 유지하는 것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그래서 목적 조직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은채 큰 규모에서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한 점이다.
기능 조직에서는 보통 팀장, 파트장 혹은 매니저가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포인트는 그 한두명에게로 쏠린다. 마치 어미새가 있고 메이커들은 어미새가 상위에서 내려온 의사결정, 일감을 잘 쪼개고 워싱해서 각 메이커들에게 전달하면 그걸 일정에 맞춰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다가 스쿼드 형태로 일을 한다? 해보지 않았던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려야하고, 갑자기 나와 다른 4~7개 직무의 사람들과 매일같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한다.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에겐 어려운 적응 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애자일 방법론이 대두되어 셀이니 스쿼드니 목적 조직 비슷하게 채택했던 많은 회사들이 실제로는 목적 조직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예전 형태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봤다. 이미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어렵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런 시스템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반이 갖추어져 있어야하며, 관련 교육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그걸 교육할 사람도 필요하다. 그리고 목적 조직을 구성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포함한 내부의 데이터가 열려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의 범위 또한 기능 조직에서보다 훨씬 더 커야한다.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다른 팀이 정보를 공유를 안해줘서, 권한이 없어서 의사결정을 못내려 상위 조직에서 결재 받기를 기다린다면 기민하게 일할 수 없게 된다. 목적 조직을 구성한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적 조직을 조직의 규모에 관계없이 운영한다는 것은 형태적으로, 외형적으로, 기능적으로만 구성한다고 해서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게 아니고 경영진과 모든 임직원, 문화 및 제도 모든 방면에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다같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땐 이렇게 인력을 구성해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뜻이 맞는 몇몇이 모이면 그게 사실상 목적 조직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3년 가까이 사일로 형태로 일을 해보고 실제로 느낀 바는 아래 정도로 추려볼 수 있겠다.
첫째로, 엔지니어가 스스로 외적, 내적 동기부여를 쉽게 만들 수 있고 회사의 목표와 쉽게 align 할 수 있다. 사내에서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 그리고 거의 매주 계열사 타운홀이 열리고, 거의 매달 전사 타운홀이 열려서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현황, 앞으로 할 것과 안할 것들, 이런 의사결정의 배경과 이유를 쉽게, 자주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직, 문화, 일하는 방식, 제품, 사업 등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생기면 그 의식을 그대로 따라가서 움직이면 된다. 그럴만하다, 그럴듯하다 등의 공감을 얻는다면 일을 전개할 수 있다. 특히 PO가 그렇겠지만 엔지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문제의식을 공감하는 PO가 있고 풀고자 하는 문제의 대상도 분명하다면 엔지니어도 그 일을 하겠다고 어필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했을때 항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문제의식을 알리면 회사는 기꺼이 들으려고 하고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한다면 방안을 모색해본다. 이 점을 전직장들에 비해서 가장 속시원한 부분으로 느끼고 있고, 토스를 생각했을때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둘째로,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여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하나둘 해결해나가고, 제품을 만들고 가다듬다보면 내적 동기를 다잡을 수 있는 작은 성취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 작은 성공을 자주 쌓는 식이다. 애초에 긴 호흡으로 제품을 만들거나 수정, 배포해서 시장 피드백을 얻는게 아니라 짧은 호흡으로 움직이고, 이 짧은 싸이클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계속 돌리기 때문이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두달 걸려 만든 제품을 런칭하고 사용자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된 것을 보는 순간, 1시간 걸려 수정한 내용을 배포했을때 사용자의 불편함이 해소된 것을 보는 보람있는 순간들이 어찌보면 반복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이런 싸이클 사이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분기, 반기, 1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내가 속한 사일로나 트라이브의 사업이 생각보다 많이 성장해있고, 확장해있고, 도메인이 야금야금 커지는만큼 나도 그정도의 사고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와중에 내 한계를 맞닥뜨리는 순간이 분명히 최소한 한두번은 찾아오는데, 그 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리고 그걸 극복하고 타파해나갈 수록 나도 성장해있다.
셋째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일을 잘하고 배울 것이 많은 동료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그들도 성장하고 있다. 그들과 일하는 것도 재밌고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재밌다. 이들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푸는게 재밌다. 무한히 반복하는 이터레이션이 정말 지겹고 지칠때가 많은데, 풀어야할 문제가 생기고 동료들과 어떻게 해결할지, 해결되면 무엇이 얼마나 바뀌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런 지루함을 이따금씩 떨쳐내주곤 한다. 사고를 끊임없이 하고 크고 작은 서비스들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그와중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아나가야 하다보니 이런 일들을 잘하기도 해야하고, 정신적 체력적으로도 이런 일을 오래할 수 있도록 자기관리도 잘해야 하는데 이 두가지를 갖춘 사람들이 그냥 옆에 앉아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있다. 다른 이야기인데,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제는 협업하지 않는 동료들에게도 자주 찾아가서 말을 걸고있다.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의견이 맞지 않고 가끔 충돌해도, 내가 가끔은 실수를 해도 같이 문제를 풀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저도 계속 성장하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될게요라고 전해주고싶다.
이런 삶의 실제와 이걸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이렇게 일하다보니 일에 집중하는 삶의 몇가지 특징을 느꼈다.
첫째로, 너무 많은 양의 협업 포인트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정신적, 물리적으로 에너지와 체력이 빠르게 고갈된다. 에너지 소모와 회복의 주기가 짧다.
둘째로, <풀어볼 문제 정의 - 가설 세우기 - 개발 및 배포 - 데이터 분석 및 가설 검증> 싸이클을 계속 돌리다보면 첫 여러번의 반복은 흥미롭지만 이 싸이클을 더 이해하게 될 수록, 더 반복하면 할 수록 "아 대기업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느끼면서 일하기 싫어서 스타트업으로 왔는데 이건 뭐 더 빠르게 굴러가는 톱니바퀴네" 라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릴 여지가 있다. 이건 꼭 IT 스타트업에 국한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셋째로, 삶의 많은 부분이 생각보다 훨씬 회사와 일, 커리어에 맞춰진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이미 다양한 활동에 시간을 쓰고 있던 사람 혹은 자아정체성 파악을 뚜렷하게 마친 사람, 일에 의한 삶의 잠식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메타인지가 높은 사람)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일은 너무 잘하는데 삶의 이야기가 없는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 가능성이 꽤 있다. 당연히 일과 삶을 거의 동치로 생각해 일 자체가 삶이고 그게 나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관없다.
이것들은 분명히 리스크다. 하지만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그 크기 이상의 upside와 기회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리스크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성장시키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 직무에서도 성장이 요구되는데 인격적인 부분에서도 성장이 요구된다. 일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고 의사결정의 크기가 커지는 등 더 많은 일을 주도하다보면 팀과 사업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성장을 계속 해야하는 굴레를 견뎌야하는데 이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그리고 이런 류의 회사들은 보통 급격하게 조직의 규모가 성장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동료들에게 어떻게 소통하고 피드백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기존 직원들이 생겨나는데,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압박이 있는 상태에서 이런 동료가 옆에 있으면 회사생활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한번 이런 스타일에 적응하면 다른 회사를 가기가 어려워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제를 문제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내가 그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변화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누가 시키는 일만 하고 회사의 상황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는 방식으로는 돌아가기가 어렵게 된다.
일, 커리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특성을 듣고는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걱정어린 질문을 하거나 자신은 절대 그렇게 살고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단점으로 쉽게 비춰질 수 있는 특성일 뿐이다. 삶에 안그런 것이 어딨겠냐만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럼 이걸 단점이 아닌, 다르게 받아들일 반대편의 시각은 무엇인가?
목적 조직에선 직원의 에너지가 빠르게 고갈되는 것이 정상이다. 협업 포인트가 많으면 그 갯수만큼의 다른 영역의 사고를 해야하고(비즈니스, 개발, 사용자, 법적 이슈, 고객대응 등), 그만큼 사고의 전환이 자주 일어난다. 다른 주제를 여러개 다루는 것도 에너지가 들지만,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대상이 개발자인지, 마케터인지, 정산 담당자인지에 따라 다른 언어적 수준으로 단어와 표현의 구성을 갈음해야한다.
안좋게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고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큼 언어를 잘 다루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협업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성장 포인트로 여기고 하나씩 배우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빠르게 고갈되는 에너지의 방향을 잘 틀어서 문제 해결에 집중시키고, 그걸 해내는 과정이 무척 힘들지만 때론 즐겁고, 방전 상태에서 다시 잘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로 여기며, 결과에 상관없이 성장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바라보면 충분히 지속가능한 삶일 것이다.
살면서 한번쯤
첫직장을 박차고 나왔을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살고있다. 편해짐에 익숙해져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있는지를 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데, 지금 일하는 환경이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야생과 비슷하다보니 긴장감을 계속 느낄 수 있다.
편해져서 학습을 멀리하고, 편해져서 더이상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고, 편해져서 옆자리 동료가 무슨 작업에 몰두하는지 관심을 잃고, 편해져서 회사가 무얼하든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편해져서 다음 스텝에 무엇을 하고싶은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나는 이런 어른이 되는 것이 가장 무섭다. 호기심을 잃은 눈빛을 기억한다. 누구나 살다가 한번쯤은 열정을 다해서 무언가 해보고싶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정해진 것 투성인 회사를 다니면서 그 열정을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잃는다. 이런 점에서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움직이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고맙고 응원하고 싶다. 나도 결국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스타트업에서 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토스는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졌음에도, 금융 맥락 속에서 컴플라이언스를 지켜내면서도 해결해봄직한 문제라면 열정있는 개인들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회사라는 점이 내게는 의미가 크고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그리고 회사는 상황과 변수에 관계없이 이 문화를 지켜내는 것에 진심이다. 이 문화와 체계를 잃으면 슬퍼할 사람이 정말 많을 것 같다. 내가 여전히 대기업을 다녔으면, 다른 금융 회사를 다녔으면 지금처럼 일에서 의미를 찾고 열정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물론 토스도 계열사마다 상황이 너무나 달라서 위에서 말한 점이 많이 다를 수도 있고, 토스 말고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여럿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기에서 일했고, 의미있는 변화를 맞이했다. 토스에서 일했던 지난 근 3년을 되돌아보면, 살면서 한번쯤 이런 회사에서 일해보면 좋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과 회사,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토스에서 일에 몰입하면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 잘 알게됐다는 점을 더 가치있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