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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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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게임

나이 불문하고 인터넷과 소셜 앱 때문에 논리적으로 모두가 가까이 사는 요즘, 옆동네 아무개가 무슨 회사를 다니는지, 200km는 떨어져있는 또 다른 아무개가 어떤 부동산을 샀는지를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앱을 여는 순간 알 수 있다. 내 나이대 사람들은 요새 무엇에 관심을 갖고있는지, 트렌드가 무엇인지, 자산 규모는 어떤지, 무엇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다. 온갖 매스컴에서 통계 자료를 뿌려대기도 하고 릴스 쇼츠에도 그런 것들 천지다. 그런걸 왜 보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꽤나 많이 소비되는 콘텐츠 중 하나다. 회사를 쉬며 몇주의 긴 시간을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보내는 지금, 사람들이 무엇에 유독 취약한지 더 잘 보이는듯 하다. 가만 보면 인류가 미디어를 처음 접하고나서 스스로도 어쩔 줄을 모른다고 보는게 더 맞는 것 같다.

이 거대한 현상은 정말 많은 사람이

  1. "나"가 누군지 잘 모른다.
  2. 각자의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단체 레이싱을 하고있다.
  3. 무엇이 주된 의견인지, 주된 방향인지 살피고 그걸 따르려한다.
  4.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걸 스스로 만들어낸 생각이라고 믿게 된다.
  5. 타인, 특히 또래가 무엇을 하는지에 큰 관심이 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행동은 그렇다.
  6. 비교에 취약하다.
  7. 나 자체로 혹은 어느 지점에서 만족할 수 있는 심리적 방법을 모른다.

이렇게 줄여서 설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엔 어떠한 가치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미디어의 영향이 어느때보다 더 커진 지금, 이 일곱가지 범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갈 수록 많아지는 것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혹은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평생토록 뭘 하고 살고싶은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 자신을 잘 모른다. 그래서 비교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나 문화적/교육적 이유로 인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가치관을 갖게 됐고 이런 저런 일을 왜 하고싶은지 정립이 잘 되어있지 않다. 가치관 정립을 해야할 외부 요인이 잘 생기지도 않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이걸 모른다고 밥을 못먹거나 돈을 못벌지도 않거니와, 아이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자라면서 부모님과 가치관 형성에 관한 대화를 심도있게 나누는 것이 한국의 주된 정서와 문화가 아닌 것도 한몫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 사이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은 사안들이 쉽게 가십거리가 된다. 특히 남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정말 자주 느낀다. 이걸 뒤집어서 보면 대화와 관심사에 "나"가 쏙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안보이고, 불확실성 투성인데다가 생존과 책임의 문제 등 문제가 해가 갈수록 쌓여서 "나"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벅차다. 이런 와중에 남에게 그만한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더 중요한 문제에 시간을 쓰지 못한다는 의미다.

가령, 갓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밈이 생기고, 그렇게 살기 위해 스터디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나이대별 평균 자산규모와 연수입에 관한 콘텐츠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다. 어떤 콘텐츠가 득세를 하고 인기를 얻는 것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의 A 시기까지 B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는 것 같이 호들갑을 떤다. 대학도, 연봉도, 자산도, 결혼도, 집도, 아이도, 아이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런 말들을 숏츠와, 가정의 밥상머리와, 명절 친척 모임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 역사와 문화적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은 어른들마저 이런 비교에서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세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다.

주택가격으로 가상의 벽을 만들어 알량한 자존심을 드러내는가 하면 주변 또래가 얼마를 벌었는지에 너무 쉽게 영향을 받다보니 주식투자의 규칙을 알려하지 않고 단기적 수익에 집착한다. 게다가 시장에는 그 박탈감을 자극해 매출을 만드는 비즈니스마저 득세하고 있다. 누구든 한번쯤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나라가 좁은 탓일까 비교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제는 거의 트렌드로 보일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은 크게 연속적인 세가지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첫번째는 나를 돌보고 알아가는 것, 메타인지를 얻는 것에 소홀하기 때문이며, 두번째는 그래서 많은 시간을 남이 말하고 정해주는 인생을 살기 때문이며, 세번째는 그래서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짜 자기 인생을 살고있으면 옆집 아무개가 몇살에 땅을 샀든, 뭐가 유행을 하든, 사람들이 갓생을 살든 말든 관심을 갖거나 말하고 다닐 이유가 없다.

우리는 레이싱이 아니라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근래들어 나는 성장이 주변에 비해 느린건지 빠른건지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을 잘하면서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면서 가끔 튀는 바닷물에 입에서 짠맛이 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은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나만의 길을 걷는 것 이런 글을 썼을만큼 이런 소모적인 생각을 하는 것에서는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 어느샌가 망각을 해버렸다.

그러다 작년에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을 읽고 다시 한번 이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via internet) 가까이 살고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특정 카테고리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뇌가 자동적으로 하는 것인데, 실상 우리 모두는 평생을 같은 비교선상에 둘 수 없는 각자의 게임을 하고있기 때문에 비교가 성립이 되지 않아서 의미가 없고, 대부분 부정적 감정을 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목적없이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때로는 우월감을, 때로는 침울함을 느끼기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선택했을 뿐이다. 메타인지가 있다면 의식적으로 환기를 하며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을테다.

비교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비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자. 느리면 어떡할 것인가? 남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면 그럼 또 어떡할 것인가? 그냥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조바심을 내고 남들이 가는 곳으로 빨리 따라갈 생각을 할 것인가? 이 모든 비교 질문에는 훌륭한 답이 없다. 그저 비교 기준에 의해 두 대상의 우위가 가려질 뿐이다. 누군가가 주변에 비해 빨라보이는가? 능력이 너무 출중해보이는가?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수준이 남달라보이는가? 결국 이것만으론 멀리가지 못한다. 돈의 심리학에는 이런 류의 예시가 나온다. A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각각 1년씩 조기졸업 했다. 대학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시민권자라 군대는 애저녁에 스킵했다. 금융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융합한 분야를 연구해 서른이 조금 넘은 시기에 칼텍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금융공학을 파서 금융업에서 몇년을 일한 지금, 서른셋에 45만 달러를 계약연봉으로 받는다. A는 여기까지 와보니 꽤 즐겁다고 생각한다. 같은 30대 동년배들에 비해 압도적인 경제적 여유가 있고 앞으로 미래를 생각해봐도 꽤나 차이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업무적으로 성장도 빠른 것 같다. 그럼 A는 그 만족감을 오래도록 느끼면서 살 수 있을까? 비교에 취약한 사람이라면 거의 그렇지 않다.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A는 자신보다 4살이 어린데 60, 70만 달러를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을 머지않아 목격하게 된다. 따라잡으면 또 그 위에 누군가가 있다. 인간은 수없이 많고 다양하고, 말도 안되는 부자와 말도 안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장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을뿐 언제나 주변에 있다.

그래서 "비교"는 전개하려는 논지가 비교 자체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 비교를 통해서 얻은 답을 다른 더 중요한 논리를 세우는 데에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비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돈의 심리학에서는 어느 수준에서는 비교를 멈추고 만족할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어느 수준에서 멈출줄 아는 것이 각자 인생의 프레임워크다. 그 수준은 내가 추구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령, 추구하는 방향이 명확하다면 인생에서 어느 단계를 건너뛰어야 하는 시기가 왔을때, 이미 이 시기를 건너간 누군가의 행보와 자신을 비교해서 얻어낸 교훈을 활용할 줄 안다면 그건 메타인지가 있는 사람이고 "건강한 비교"를 하고있는 것이다.

비교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비교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고, 모두가 각자의 게임을 하고있다는 진실을 깨우치기 어려워진다. 비교의 굴레에 빠져 옆동네 이웃이 땅을 사고 집을 샀다는 사실에 배가 아프다는 말 같지도 않은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한국에 이런 속담이 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주변에 비해 느리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패배감에 절어 살 것인가? 아니면 그 간극을 메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인가? 과거에는 후자가 당연히 낫다고 생각했다. 성장하는 인간이 당연히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저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게 좋겠다" 라는 방향성은 좋기는 하지만 맥락이 결여되어 있다. 주변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만의 게임을 하고있다는 인지가 있는 상태에서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을 위해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식으로 방향성을 세우는 것이 더 오래가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떠드는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내가 원하는 것인줄 착각하고 그것을 위해 성장하려고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스스로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 중에는 외부에서 영향을 받아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싶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력에 의해 무의식속에서 내가 원한다고 믿게끔 만들어진 것이 꽤 많다.

똑같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방향성 아래에서도 누구는 그 성장의 방향이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되어 추구하는 것이 돈, 부동산, 사회적 지위가 되고, 누구는 성장의 방향이 자신이 정한 "살고싶은 삶, 되고싶은 인간"이라는 이미지에서 정해 추구하는 것이 어제보다 나은 나, 어제 해보지 않은 생각,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스포츠가 된다. 물론 후자의 경우에서도, 남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도 추구하는 것이 돈일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후자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돈을 좇더라도 대화를 해보면 이 사람은 돈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5분도 안되어 알아차릴 수 있다. 돈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돈의 무게, 돈을 담을 수 있는 생각의 그릇, 돈의 특성, 건강한 부채와 그렇지 않은 부채를 구분하는 방법 등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정말 "돈" 자체에 대해서 알아가고 연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수준의 돈을 갖고서도 물질적인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각자의 게임이 무엇인가?

지금은 모두가 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어서 서로를 비교하고 자신을 나무랄 수 있지만, 어떻게 아는가? 2년 뒤에 서로가 어떤 길을 걷고있을지,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새 멀찌감치 나아갔을지 혹은 투자로 성공했을지. 그렇다고 2년 뒤에 그 투자에 성공한 사람을 보고 부러워할 것인가? 그러다 그 사람이 투자에 성공하고 1년도 안되어 사기를 당한다고 한다면 그땐 비웃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는 항상 찰나를 산다. 현재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할 필요도, 비웃을 필요도 없다. 이런 즉각적인 비교 판단은 미루면 미룰 수록 좋고, 품고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 당장의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해나가면 된다.

당장은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문화적 배경과 가치관, 성격,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합쳐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능력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이런 가능성들을 무수히 품고 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역량의 조합의 가능성은 너무 많아서 하나의 특성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가 어렵다. 당장 평가할 수 있는 것 조차도 나중에 다른 능력과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이 타인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각자의 게임을 하고있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누군가가 대학 졸업을 늦게 해서 취업에 애를 먹고있다면 응원과 조언을 건내면 되고, 누군가가 투자에 성공하고 집을 샀다면 그 사실을 진정으로 축하해주면 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사기를 당해 고생을 하고있다면 도움이 필요할때 손을 내밀면 된다. 레이싱을 하고있는 사람은 뒤늦은 취업을 준비하는 지인을 보며 응원 대신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의 일만 생각할 것이고, 이른 시기에 경제적 성공을 일군 지인을 보며 시기심과 질투심에 배아파 할 것이고, 그러다 몇년 뒤 사기를 당해 고생하는 것을 본다면 위로의 한마디 혹은 도움 대신 고소해하고 있을 것이다. 꽤나 양극단의 이야기를 풀었지만, 전자보다 후자는 미디어와 주변에서 생각보다 훨씬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레이싱을 하고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나의 게임

지금껏 다룬 내용에서 얻은 메타인지를 끼얹어 내가 주변과의 성장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별로 건강하지 못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이 생각은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가지 기준에서 성장이 둔하거나 빨라보이는 사람들과 무의식적으로 비교를 하면서 떠올린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 깊게는, 그 간극을 메우고 싶은 욕망이 즉각적으로 만들어낸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죽음을 떠올리며 삶을 돌아봤을때 진정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빠 덕분에 돈의 심리학을 읽고 이 글을 쓰게 됐다. 여기서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평생에 걸쳐 복리효과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이제는 인생과 비교에 대해서 전보다 넓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할 모든 생각과 행동, 의사결정에 이 메타인지를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한지 몇년 지나지 않은 2017년쯤 링크드인에서 이런 글을 봤었는데, 이게 딱 각자의 게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온몸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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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누구와 비교할 것도 없이 어제 할 수 없었던 것을 당장 공부해서 내일 시도하고 완수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다니던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외엔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비교를 한다는 건 지금 배가 불렀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시작 단계와 정말 힘든 시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배가 부른 시간들일 것이다. 그러니 여유도 부리고, 사치도 부리고, 누가 더 무엇을 잘하나, 더 많이 가졌나로 수다를 떨며 비교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처럼 오로지 어제의 나와만 비교를 하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나의 게임"에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내 인생의 고유한 게임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평생 이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편히 눈감을 수 있다. 그것들이 무엇인가?

그럼 나의 게임은 무엇일까? 치앙마이에서 쉬는 동안 이것을 생각해보면서 내가 무엇에 시간과 자원을 많이 쓰는지 돌아보았다. 어렴풋이 알고있었는데, 지지난 글에서 드러나듯 난 지금도 사람이 모여있을때 발생하는 복잡계적 현상과 조직 문화를 알아가고 그걸 회사 생활에 빗대어 생각해보며 작은 조직에 적용해보는 것에서 큰 재미를 느낀다. 과거에 남긴 회고록에서 룬샷을 잠깐 언급했는데 이 책을 보고 끝까지 살아남는 조직, 이기는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떻게 인센티브 설계가 되어있는가, 그래서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얻었고 그게 지금 회사와 얼마나 닮아있는지, 지금 회사는 그걸 어떻게 달성해가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을 계속 해나갈 것 같다. 이것처럼 모르지만 관심있는 분야를 조금씩 섭렵하면서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들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보건데 아마도 평생 할 것 같다. 이런 것들엔 당장 외국어와 사진, 조직문화, 비즈니스를 위한 가벼운 엔지니어링이 있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있으니 커리어와 투자는 제쳐두고, 이 조합에 매년 작은 변화를 주면서 살아가리라. 혹시 아는가? 개발자라는 직업의 형태가 너무나 바뀌어 2년뒤에는 기계 에이전트에게 프론트엔드 일을 맡기고 나는 조직문화를 양성하는 무언가로 일하면서 살아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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